잡월드ON

표창원범죄과학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는 표창원 소장은 경찰대학교를 졸업하고 경찰로 근무하다 영국으로 유학을 떠나 경찰학 석사 및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때 범죄학, 범죄심리학, 범죄수사기법, 프로파일링 등을 공부했을 뿐만 아니라 영국 데본 주 경찰청 및 경찰발전청 프로파일링 팀에서 실무 연수를 수행하기도 했다.

“제가 한국으로 돌아와 일을 시작할 때만 해도 프로파일러(Profiler)라는 분야는 무척 생소했어요. 하지만 우리나라 경찰들이 다양한 사건에서 활약하고, 범죄 드라마나 영화 등을 통해 프로파일러가 소개되면서 점점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범죄 수사 관련 직업 종사자의 역할은 서로 비슷하게 느껴지지만 각자 엄연히 다르다. ‘프로파일러’는 전통적인 수사 기법이나 방식, 절차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강력 범죄 사건을 분석해서 수사 방향을 제시하는 ‘범죄심리행동분석 전문가’를 말한다. 흔히 ‘형사’라고 불리는 범죄수사관은 경찰관이나 검찰 수사관 또는 군경찰 수사관처럼 법적 권한을 가지고 수사를 행하는 공무원을 일컫는다. 그중에서도 과학 수사 전문 교육 훈련을 받고 현장에서 증거를 찾아 확보하는 사람을 ‘과학수사요원(CSI)’이라고 부른다.
또한 실제 범죄 사건 수사 분석을 하는 프로파일러와 달리 ‘범죄심리학자’는 대학 교수 혹은 연구소 연구원으로 근무하며 범죄자의 심리적 문제를 연구하고 그 교정이나 예방책 등을 탐구한다.

우리가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는 프로파일러들은 직접 사건 현장에 나타나기도 하고, 직접 총이나 수갑을 가지고 다니며 범인을 쫓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은 극적인 재미를 위해 만든 비현실적인 모습이라는 것이 표창원 소장의 설명이다.
“프로파일러는 실제 사건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이 아니에요. 현실 속 프로파일러는 분석실에 앉아서 산처럼 쌓인 사건 자료와 사진, 영상을 분석하는 게 주요 업무입니다. 물론 현장감을 느끼기 위해 사건 현장에 나가보기도 하고, 용의자가 검거되면 조사실에서 마주 앉아 신문(면담 조사)을 하기도 하죠.”

강력범을 상대하는 경우가 많아 프로파일러 일이 위험하지 않느냐고 물어보는 사람도 종종 있다. 하지만 표창원 소장은 흉악범이라고 해도 기소되기 전 프로파일러를 마주할 때는 분노나 공격성을 보이지 않는다고 이야기한다.
“프로파일러가 범죄자 신문을 할 땐 대상자의 특성에 맞는 ‘라포(Rapport, 심리적 공감대, 신뢰)’ 형성부터 시작합니다. 그래서 대부분 자신이 살아온 경험이나 범죄를 저지르게 된 경위 등을 순순히 이야기합니다. 2~4시간 면담 후 제가 범죄자들로부터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고맙습니다’였습니다.”
범죄자에게 불리한 범죄 사실과 범행 동기 등을 털어놓게 했는데 왜 고맙다고 하느냐고 물으면 그들 대부분은 “지금까지 살면서 자기 얘기를 이렇게 진지하게 잘 들어준 사람은 처음이었다”고 답한단다. 프로파일러들이 자기 일에 애정을 갖게 만드는 순간이기도 하다.

2023년 1월 한국잡월드 특강 무대에 선 표창원 소장.

공식적인 지위와 권한을 가지고 직업으로서 범죄 사건을 분석하는 프로파일러가 되려면 경찰 등 수사기관 소속 공무원이 되어야 한다. 공무원이 된 후 각 수사기관의 교육 연수 프로그램 중 프로파일러 양성 과정을 이수하면 전문적인 프로파일러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대학 교수나 연구원 등 관련 분야의 다른 직업을 가지고 있으면서 범죄 분석에 대한 전문성을 인정받고 활동하는 민간 프로파일러도 있다. 이런 경우에는 범죄 심리 등 프로파일링 관련 분야를 전공했거나 국내외 기관 등에서 프로파일링 범죄분석 교육훈련을 받은 이력과 전문성을 인정받아야 한다. 외국 유학을 통해 학위를 취득하고 돌아와 수사기관의 자문 위원으로 민간 프로파일러 활동을 할 수도 있다.
직업적 프로파일러로 일하려면 수사기관에 소속되거나 학위 등의 전문성을 갖춰야 하지만 프로파일링 기법은 누구나 배우고 익힐 수 있다. 프로파일링은 대상의 행동이나 심리를 파악하고 논리적으로 분석하는 것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적용 분야가 넓고 다양하다. 특히 변호사 등의 법조인, 범죄 관련 창작물을 만드는 사람, 조사나 분석 관련 업무를 하는 공무원이나 회사원, 여러 사람을 대하는 교사나 의료 복지 분야 종사자들은 프로파일링 기법을 업무에 활용할 수 있다. 지금은 프로파일링 활용 분야가 제한적이지만 앞으로는 그 활용 분야가 탐정이나 로펌, 보험 조사, 기업 감사실 등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사회 전반적으로 ‘목적 달성’만 강조하다 보니 범죄자도 절도가 목적인데 사람이 있으면 살인까지 저지르곤 합니다. 사회가 파편화되면서 공동체 의식이 약해져 흉악한 범죄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이제 우리는 범죄가 발생하지 않도록 사회안전망을 튼튼하게 하는 데서 나아가 범죄자가 벌을 받고 다시 사회로 나왔을 때 재활 기회를 주는 것까지 고민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이 다시 범죄자가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표창원 소장은 평소 우리 사회의 정의에 대한 소신을 꾸준히 밝혀왔다. ‘오직 정의만이 사회를 지탱한다(Justice Alone Sustains Society).’ 미국 연방정부 법무부 청사에 새겨진 이 글귀는 표창원 소장이 가장 좋아하는 문구 중 하나다.

“경제, 산업, 문화, 스포츠, 복지 등 모든 사회 분야에서 문제가 발생했을 때 옳고 그름을 가리는 것은 수사, 법, 사법 정의라고 생각해요. 그 정의 시스템만 올바르게 기능한다면 그 사회의 다른 기능이 무너져도 사회는 유지됩니다. 사람들이 그 사회를 믿기 때문이죠. 범죄 수사는 그 사회 정의 시스템의 주축입니다. 과학과 논리로 무장하고, 어떤 압력이나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는 정의로운 수사 전문가의 꿈을 꾸는 여러분을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