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이스 디자이너 / 건축가 유현준

소멸하는 시간, 발아하는 공간
건축가 유현준의 ‘건축학개론’
대한민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건축가 유현준 교수를 만났다.
그가 말하는 건축가라는 작업과 우리가 조만간 마주하게 될
공간의 미래에 대해 들어봤다.
인터뷰 김민지 글 임지영 사진·영상 연스튜디오
직업세계스페이스 디자이너 / 건축가 유현준 인쇄
소멸하는 시간, 발아하는 공간
건축가 유현준의 ‘건축학개론’
대한민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건축가 유현준 교수를 만났다. 그가 말하는 건축가라는 작업과 우리가 조만간 마주하게 될 공간의 미래에 대해 들어봤다.
인터뷰 김민지 글 임지영 사진·영상 연스튜디오

인문, 사회, 과학이 어우러진 가장 완벽한 전공 '건축'

방정식처럼 답이 하나로 정해져 있는 문제는 싫었다. 그보다는 골똘히 해법을 찾아가야 하는 문제가 좋았다.

“그래서 풀어야할 과제가 많은 건축가가 된 건지도 모르겠어요.”

TV에서 보던 특유의 유연한 미소를 지으며 유현준 교수는 말한다. 어린 시절 그는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건 언제나 즐거운 놀이였고 그림을 그리며 꿈을 키웠다. 장난감조차 스스로 만들던 아이는 발명가가 되고 싶었다. 남들이 생각하지 않는 기발한 생각을 하는 것이 좋아서였다. 고교에 진학한 그는 선택의 기로에 섰다. 부모님은 법관이 되길 원했으나 그는 이과를 선택했다.

“수학을 좋아하지 않았어요. 이과생으로는 치명적이죠. 원래 한 가지 답을 추구하는 질문은 적성에 안 맞아요. 수학을 좋아하는 사람이 전세계 인구의 10%밖에 안 된다니 제가 이상한 건 아닙니다(웃음).”
안전모, 집 모형, 자, 연필, 도면이 어우러진 일러스트

정해진 답을 찾아가는 게 싫었던 창의력과 상상력의 소유자에게 건축은 숙명적인 선택이었다. ‘건축’이란 전공은 그가 좋아하는 많은 요소들을 담고 있는 완벽한 패키지였다.

“건축을 하려면 기본적으로 철학은 알아야 해요. 제 경우는 철학 외에, 심리학이나 물리학에도 관심이 많았어요. 예술에도 조예가 깊다면 더할 나위가 없을 거고요.”

아는 만큼 보인다고 건축의 세계가 딱 그랬다. 그는 닥치는 대로 책을 읽고 그의 말대로 '얕지만 넓게' 다양한 분야를 섭렵하며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갔다. 유학을 떠났고, 세계적인 건축가인 리처드 마이어의 사무소에서 현장 경험을 쌓았으며 2017년 시카고 아티네움 건축상, 독일 디자인 어워드 등 국제 및 국내 건축상을 30여 차례 수상했다. 현재는 홍익대학교 건축도시대학에서 교편을 잡는 동시에 자신의 이름을 건 건축 사무소를 운영하며 건축 이야기와 건축에 담긴 ‘관계’의 중요성을 알리는 활동을 하고 있다.

“공간은 사회, 사람과 유기적 관계를 맺습니다. 저는 제대로 설계된 공간 구조가 사회를 더 화목하게 만들어준다고 믿습니다. 건축가는 공간과 건축을 통해 이를 실현하는 사람이고요.”

건축가란 선한 영향력을 지속적으로 발휘할 수 있는 직업

건축가 유현준 인터뷰 모습

그가 꼽는 건축가라는 직업의 매력은 다름아닌 ‘선한 영향력의 발현’이다.

“살면서 나를 표현할 수 있는 직업은 몇 개 안 됩니다. 우선은 예술가가 그렇고, 건축가가 그렇지요. 건축가는 자기를 표현할 수 있으면서 동시에 현실이라는 땅에 발을 딛고 있는 직업입니다. 사회적으로 많은 도움을 줄 수 있고 그 도움을 토대로 지속적으로 선한 영향력을 유지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지요.”

매력도 단단하지만 무에서 유를 창조하고 미학을 추구하며 혼돈에 질서를 부여하도 하는 직업인 만큼 직업병도 상당하다. 무엇이든 가지런히 줄을 맞춰야 하고 정리정돈을 해야 하는 습관이 그것이다.

“밥먹고 설거지거리가 쌓여있으면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약간의 빈틈조차 봐주지 못하는 게 괴롭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정리정돈된 게 좋으니까요.”

흐트러진 사물이나 무질서한 공간보다 더 그를 괴롭히는 것이 있다. 건축가로서 확신이 희미해질 때 엄습해오는 불안감이다. 예술, 창작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라면 당연히 맞닥뜨리는 인간적 한계지만 그 속에서 깨달은 바는 있다. 작은 실패를 큰 실패로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작은 실패를 할 때마다 불안감이 엄습해 옵니다. 스스로 잘하고 있는 지, 이게 맞는지 의문이 드니까요. 그럴 때는 스스로 자신감을 가질 수 있게 작은 성취를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작은 성취를 차곡차곡 쌓으면 실패를 상쇄하고 자신감을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그는 잘 지은 건축에는 ‘잘 된 소통’이 있다고 강조한다.

“아무리 멋진 돛단배가 있다 한들 순풍이 불지 않으면 항해를 할 수 없지요. 건축도 마찬가지입니다. 건축주, 사용자, 이웃, 그리고 그곳을 지나치는 사람들. 이들을 고루 만족시킬 수 있는 건축이 좋은 건축이고, 좋은 건축을 완성하는 가장 좋은 수단은 커뮤니케이션입니다.”
도심  배경에서 도면을 보고있는 세명의 사람 일러스트

자발적으로 공간을 탐구할 수 있는 시간을 선물하고파

팬데믹을 거치는 동안 공간은 변했고 공간을 인식하는 방식도 변화했다. 특히 비대면을 맞은 아이들의 공간은 사상 유례없이 좁아졌다. 상상의 크기는 생활 영역의 크기와 비례한다고 했던가. 건축가인 그는 이를 어떻게 생각할까.

건축가 유현준 캐릭터 미니어쳐
“하루는 아들이 새로운 공간을 발견했다고 놀라워했어요. 알고보니 집에서 겨우 한블럭 떨어진 곳이었습니다. 걸어서 15분이면 갈 수 있는 다음 사거리가 아이에게는 신천지였던 거죠. 학교, 집만 오가게 한 건 아니었나 돌아봤습니다.”

그의 아버지 세대만 해도 집에서 학교까지 1시간 거리를 걸어다녔다. 요즘 아이들은 학교와 집의 한블럭 바깥 세상도 보지 못하고 산다. 15인치 노트북 화면으로 게임의 배경만 접하는 아이에게는 그것이 그가 경험하는 세상의 전부일 수 있다. 경험하는 세상의 크기의 차이는 생각의 크기의 차이로 이어진다. 그는 부모들에게 두려워하지 말고 아이에게 자발적인 공간 체험의 시간을 줄 것을 권한다.

“이미 방송에서도 여러번 한 얘기지만 학교라는 공간 자체가 바뀌어야 해요.
할 수만 있다면 아이들에게 공간보다 시간을 주고 싶습니다. 일주일에 단 몇시간만이라도 자발적으로 자유롭게 공간을 탐구할 수 있는 시간을요.”

건축가가 되기를 꿈꾸는 아이들에게 그는 ”건축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것 자체를 응원해주고 싶다”고 말한다. 앞으로 시간을 마음대로 쓰기 위한 인간의 시도는 더욱 다양해질 것이며 제한적 공간에서 공간적 자유를 누리기 위한 욕망 역시 커지기 때문에 건축가의 역할 또한 중요해질 거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현실공간이나 가상공간에 상관 없이 '관계'는 인간 유전자에 각인된 삶의 코드입니다. 미래에는 사람들 간의 관계를 어떻게 재정립할 것인가에 중점을 두고 공간이 만들어질 겁니다. 공간은 바뀌어도 건축의 중심에는 여전히 사람이 있을 거고요.”
공간의 미래 공간이 만든 공간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어디서 살 것인가
↑유현준 건축가 발간 도서
건축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것 자체를 응원해주고 싶습니다.
앞으로 시간을 마음대로 쓰기 위한 인간의 시도는 더욱 다양해질 것이며
제한적 공간에서 공간적 자유를 누리기 위한 욕망 역시 커질 겁니다.
건축가의 역할 또한 더욱 중요해지겠죠.
건축가를 꿈꾼다면? 유현준 교수가 말하는 건축가 수업
  • 01과학자의 태도 어떤 현상의 옳고 그름을 따지기 보다 현상 자체를 깊이있게 관찰했으면 좋겠습니다. 그게 과학자의 태도죠. 관찰력은 세상을 인식하는 힘을 길러줍니다. 건축에도 과학적 태도가 필요합니다.
  • 02폭넓은 독서 독서라 해서 청소년 권장도서를 읽으라는 얘기가 아닙니다. 책을 읽더라도 내 의견을 갖고 그 생각을 창조적 힘으로 연결시키라는 얘기에 가깝지요.
  • 03변화를 읽는 능력 건축가는 세상의 변화를 읽고 그걸 건축적으로 해석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요컨대 새로운 기술은 우리가 세상을 인지하는 방식을 바꿉니다. 생각이 바뀌면 주변을 구성하는 공간을 바꾸게 되고요. 변화를 읽게 되면 니즈를 읽게 되고 미래에 대비할 수 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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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댓글 1

  • ㅇㅇ 2024.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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