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정식처럼 답이 하나로 정해져 있는 문제는 싫었다. 그보다는 골똘히 해법을 찾아가야 하는 문제가 좋았다.
TV에서 보던 특유의 유연한 미소를 지으며 유현준 교수는 말한다. 어린 시절 그는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건 언제나 즐거운 놀이였고 그림을 그리며 꿈을 키웠다. 장난감조차 스스로 만들던 아이는 발명가가 되고 싶었다. 남들이 생각하지 않는 기발한 생각을 하는 것이 좋아서였다. 고교에 진학한 그는 선택의 기로에 섰다. 부모님은 법관이 되길 원했으나 그는 이과를 선택했다.
정해진 답을 찾아가는 게 싫었던 창의력과 상상력의 소유자에게 건축은 숙명적인 선택이었다. ‘건축’이란 전공은 그가 좋아하는 많은 요소들을 담고 있는 완벽한 패키지였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건축의 세계가 딱 그랬다. 그는 닥치는 대로 책을 읽고 그의 말대로 '얕지만 넓게' 다양한 분야를 섭렵하며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갔다. 유학을 떠났고, 세계적인 건축가인 리처드 마이어의 사무소에서 현장 경험을 쌓았으며 2017년 시카고 아티네움 건축상, 독일 디자인 어워드 등 국제 및 국내 건축상을 30여 차례 수상했다. 현재는 홍익대학교 건축도시대학에서 교편을 잡는 동시에 자신의 이름을 건 건축 사무소를 운영하며 건축 이야기와 건축에 담긴 ‘관계’의 중요성을 알리는 활동을 하고 있다.
그가 꼽는 건축가라는 직업의 매력은 다름아닌 ‘선한 영향력의 발현’이다.
매력도 단단하지만 무에서 유를 창조하고 미학을 추구하며 혼돈에 질서를 부여하도 하는 직업인 만큼 직업병도 상당하다. 무엇이든 가지런히 줄을 맞춰야 하고 정리정돈을 해야 하는 습관이 그것이다.
흐트러진 사물이나 무질서한 공간보다 더 그를 괴롭히는 것이 있다. 건축가로서 확신이 희미해질 때 엄습해오는 불안감이다. 예술, 창작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라면 당연히 맞닥뜨리는 인간적 한계지만 그 속에서 깨달은 바는 있다. 작은 실패를 큰 실패로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잘 지은 건축에는 ‘잘 된 소통’이 있다고 강조한다.
팬데믹을 거치는 동안 공간은 변했고 공간을 인식하는 방식도 변화했다. 특히 비대면을 맞은 아이들의 공간은 사상 유례없이 좁아졌다. 상상의 크기는 생활 영역의 크기와 비례한다고 했던가. 건축가인 그는 이를 어떻게 생각할까.
그의 아버지 세대만 해도 집에서 학교까지 1시간 거리를 걸어다녔다. 요즘 아이들은 학교와 집의 한블럭 바깥 세상도 보지 못하고 산다. 15인치 노트북 화면으로 게임의 배경만 접하는 아이에게는 그것이 그가 경험하는 세상의 전부일 수 있다. 경험하는 세상의 크기의 차이는 생각의 크기의 차이로 이어진다. 그는 부모들에게 두려워하지 말고 아이에게 자발적인 공간 체험의 시간을 줄 것을 권한다.
건축가가 되기를 꿈꾸는 아이들에게 그는 ”건축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것 자체를 응원해주고 싶다”고 말한다. 앞으로 시간을 마음대로 쓰기 위한 인간의 시도는 더욱 다양해질 것이며 제한적 공간에서 공간적 자유를 누리기 위한 욕망 역시 커지기 때문에 건축가의 역할 또한 중요해질 거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전체댓글 1
댓글이 없노